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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057Crossfire Hurricane2012
스크리닝 룸 · 영화 057

Crossfire Hurricane

밴드의 후대 수십 년을 의도적으로 비켜가는 공식 50주년 역사

감독Brett Morgen
영화 연도2012
상영 시간111분
국가
아카이브 분류Blues-Rock / Rock and Roll / Artist Documentary / The Rolling Stones

Rolling Stones는 50주년을 기념하면서 대부분 첫 20년만 다루는 영화를 만들었다

50주년 다큐멘터리라면 1962년부터 현재까지 연대순으로 밀고 나가는 구조가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Brett Morgen은 Crossfire Hurricane에서 더 영리한 선택을 한다. 111분짜리 영화는 Rolling Stones가 훗날 5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기관으로 변해가던 시기에 압도적으로 집중한다. 블루스에 집착하던 시작, Brian Jones, Jagger-Richards 작곡 파트너십, 법적 스캔들, Altamont, 세금 망명, Exile on Main St., Mick Taylor의 탈퇴, Ronnie Wood의 합류, Keith Richards의 1970년대 후반 heroin 위기까지 이어진다.

후대 수십 년은 같은 깊이로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의 진짜 주제는 압력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Morgen은 밴드가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 내부 습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이해하려 한다.

이 선택은 anniversary documentary의 가장 나쁜 습관 중 하나도 피한다. 오래 버틴 사실 자체를 내용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후 30년의 투어와 앨범을 연대순으로 나열했다면 Stones의 정체성이 실제로 불안정했던 순간들에 쓸 공간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제목은 "Jumpin' Jack Flash"의 첫 구절에서 가져왔으며, 우연, 미디어 관심, 스스로 만든 신화의 충돌에 관심을 두는 영화에 잘 맞는다.

현재 시점 인터뷰 화면을 숨긴 선택 덕분에 화면은 계속 역사적 시기 안에 머문다

Morgen은 현재 및 전 Stones 멤버를 새로 인터뷰했지만, 대부분 그들의 현대 모습으로 컷하지 않고 아카이브 이미지 위에 목소리만 들려준다. 이 형식적 결정은 영화 전체를 바꾼다.

Mick Jagger는 자기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면서도 화면에는 젊은 얼굴이 남아 있다. Keith Richards는 1970년대 영상과 세심하게 조명된 현대 인터뷰 의자 사이를 오갈 필요 없이 addiction을 회상한다. Bill Wyman과 Mick Taylor는 밴드 역사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시각적 공간은 계속 논의 중인 시기에 남아 있다.

이 방법이 hindsight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장은 자서전, 인터뷰, 사적 기억 속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 갈등 뒤에 말해진 것이다. 제거되는 것은 시각적 hindsight다. 밴드는 화면에서 늙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원리는 Tom DiCillo가 When You're Strange에서 아카이브를 다룬 방식과 비슷한 몰입형 역사 흐름이 생기지만, Morgen은 사운드 디자인과 montage에서 훨씬 더 공격적이다. 결과는 뮤지션들이 오래된 사진 앨범을 설명하는 느낌보다 기억이 사진 안에 직접 들어가 있는 느낌에 가깝다.

Brian Jones는 후대 역사가 Stones를 Jagger와 Richards 중심으로 재편하기 전에는 밴드의 중심이었다

후대 Rolling Stones 신화가 Mick Jagger와 Keith Richards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작곡, 시각적 정체성, 장기적 생존이 결국 핵심 파트너십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 밴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Brian Jones는 멤버를 모으고 그룹의 초기 블루스 및 rhythm and blues 지향을 정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그의 악기 호기심은 기타 중심의 공적 이미지와 달리 slide guitar, marimba, sitar, dulcimer 등 다양한 질감을 음반에 더했다.

Crossfire Hurricane은 수십 년의 감정이 쌓인 뒤 밴드가 Jones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득을 본다. 존경, 좌절, 비극이 같은 역사 안에 있다. 동시에 영화는 록 전기의 가장 위험한 서사 형태 중 하나를 피해야 한다. 처음부터 몰락이 예정된 창립자라는 구조다. Jones의 약물 사용과 점점 커지는 신뢰성 문제는 밴드에 심각한 영향을 줬지만, 그의 커리어를 1969년 죽음으로 향하는 경로로만 축소하면 왜 그의 부재가 음악적으로 중요했는지가 사라진다. 좋은 페이지는 후대의 연속성이 결말을 필연처럼 보이게 만들기 전에 초기 밴드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Jagger와 Richards가 작곡을 시작한 이유는 빌려온 블루스만으로 밴드가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니저 Andrew Loog Oldham이 Jagger와 Richards에게 곡을 쓰도록 밀어붙였다는 익숙한 이야기는 밴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초기 Stones 정체성은 American blues, rhythm and blues, rock and roll을 해석하는 데 크게 의존했다. 자작곡은 경제와 예술적 가능성을 동시에 바꿨다. "(I Can't Get No) Satisfaction", "Paint It Black", "Jumpin' Jack Flash"와 이후 곡들은 그룹이 주로 해석자 역할에서 벗어나 식별 가능한 자기 카탈로그를 만들게 했다.

다큐멘터리의 아카이브는 불편한 역사적 관계도 드러낸다. Rolling Stones가 등장한 음악 언어의 상당 부분은 Black American 뮤지션이 만들었지만, British performer는 원 아티스트가 얻지 못한 상업적 접근과 세계적 가시성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Stones는 자신들의 빚을 반복해서 인정했고 일부 청취자를 블루스 뮤지션에게 소개하는 역할도 했지만, 인정 자체가 불평등한 산업 조건을 지우지는 않는다. 현대 페이지는 젊은 British 뮤지션이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발명했다고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이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 중요한 역사는 불평등한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진 교환이다.

Beatles와의 경쟁은 참여자들이 직접 회상하게 두면 점점 더 미디어 상품처럼 보인다

Rolling Stones와 Beatles는 반복해서 반대편으로 배치됐다. 점잖음 대 위험, pop 대 blues, 깨끗함 대 더러움. 다큐멘터리는 실제 뮤지션들이 겹치는 사회적·전문적 세계를 오갔음에도 이 대비가 언론과 매니저에게 얼마나 유용했는지 보여준다.

그렇다고 두 밴드가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음악 발전, 내부 구조, 공적 프레젠테이션은 상당히 달랐다. 문제는 이 신화를 자발적 부족 전쟁으로 취급하고, 일부는 미디어가 만든 framing이었다는 점을 잊을 때 생긴다.

Morgen의 아카이브는 이 점에서 특히 강하다. 당시 TV 진행자와 뉴스 보도가 원래 coverage의 어조를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이다. 밴드 주변 문화가 스스로를 증언하게 된다. 50년 뒤에는 경쟁 구도를 nostalgia로 마케팅하기 쉽다. 당시 영상은 그 마케팅 중 일부가 이미 얼마나 계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Redlands 체포 사건은 도덕적 공황이 어떻게 커리어 인프라가 되는지 보여준다

1967년 Keith Richards의 Redlands 자택에 대한 마약 단속과 이어진 Richards와 Jagger의 법적 사건은 Stones와 British establishment 문화의 큰 충돌이 됐다. 점잖은 영국이 록 반항에 전쟁을 선포한 순간으로 낭만화하기 쉽지만, 현실에는 형법, tabloid spectacle, 계급 정치, 그리고 신문이 스캔들의 엄청난 상업적 가치를 알아본 사실이 모두 포함된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보도를 사용해 반응의 강도를 설명이 아니라 화면으로 보여준다.

처벌은 예상치 못한 역풍도 만들었다. William Rees-Mogg의 유명한 Times 사설은 Jagger에게 법이 지나치게 가혹했는지를 문제 삼았고, establishment의 과도한 대응에 대한 우려가 십대 팬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이 사건은 개별 멤버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면서도 Stones의 위험한 이미지를 강화했다. 아티스트가 원했는지와 무관하게 스캔들은 branding의 일부가 된다.

Altamont는 *Gimme Shelter*가 아니라 밴드 자신의 자서전 안에 들어올 때 다르게 보인다

1969년 Altamont Free Concert는 Gimme Shelter의 역사적 중심 가운데 하나다. Maysles 형제와 Charlotte Zwerin은 투어와 페스티벌 붕괴를 중심으로 영화 전체를 만든다. Crossfire Hurricane에서 Altamont는 더 큰 50년 자기 역사 안의 한 장으로 등장한다. 이 규모 차이가 중요하다.

Stones는 자기 책임과 기억을 이야기하고, 화면에는 이미 이전 다큐멘터리에서 익숙한 아카이브 자료가 흐른다. 사건은 영화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의 충격적 장이 된다.

RetroForge에서는 두 페이지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Gimme Shelter는 Altamont가 감상 경험 전체를 지배하게 하고, Crossfire Hurricane은 밴드가 훗날 그 사건을 생존 서사 안에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보여준다. 어느 관점도 중립적이지 않다. 그 사이의 거리가 역사적으로 유용하다.

Mick Taylor는 Stones의 라이브 음악이 더 유동적으로 변하는 바로 그 시점에 등장한다

Mick Taylor는 Brian Jones가 떠난 뒤 합류했고, Jones가 죽은 지 며칠 뒤인 1969년 7월 Hyde Park에서 첫 주요 공개 Stones 공연을 했다. Taylor 시기는 밴드의 가장 찬사받는 스튜디오·투어 작업 일부와 겹친다. 그의 더 부드러운 lead-guitar 언어는 특히 1970년대 초 Richards의 riff와 rhythm playing과 독특한 관계를 만든다. Crossfire Hurricane은 Taylor를 현대 인터뷰 목소리로 포함해, 결국 스스로 떠난 역사에 대해 직접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밴드 다큐멘터리가 현재 멤버에게 전 멤버를 설명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하다. 여기서는 적어도 일부 떠난 인물이 회고 대화 안에 직접 존재한다.

Taylor의 1974년 탈퇴는 음악적·개인적·생활 방식의 요소가 얽힌 복잡한 결정으로 남는다. 영화는 불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극적인 원인으로 축소하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시대는 Ladies & Gentlemen: The Rolling Stones와 직접 연결해야 한다. 거기서는 후대 설명 없이 무대 증거 자체를 볼 수 있다.

*Exile*은 생존의 한 장이 되지만, Screening Room의 다른 영화가 세부를 맡을 수 있다

세금 망명으로 France로 이동하고 Nellcôte에서 녹음한 시기는 당연히 역사에 들어간다. Exile on Main St.는 Stones의 명성에 너무 중심적이어서 anniversary documentary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Morgen에게는 111분 중 일부만 있다. 이 배치의 다음 영화인 Stephen Kijak의 Stones in Exile은 앨범 하나에 약 61분을 쓴다.

이 차이는 RetroForge의 에디토리얼 전략을 결정해야 한다. Crossfire Hurricane은 넓은 커리어 연결을 제공한다. 세금 압력, France, mobile recording setup, Keith Richards의 집, 1970년대 초 밴드의 불안정성. Stones in Exile은 지하실 조건, 기여자, Los Angeles overdub, 후대 앨범 신화의 형성을 다룰 수 있다. 각 페이지가 자기 규모를 알 때 사이트는 더 강해진다. overview가 전문 영화를 집어삼킬 필요는 없다.

Ronnie Wood의 합류는 Jagger-Richards 중심을 바꾸지 않으면서 시각적 균형을 바꾼다

Ronnie Wood는 Taylor가 떠난 뒤 Stones의 투어 세계에 들어왔고 결국 정식 멤버가 됐다. Richards와의 기타 관계는 Taylor의 보다 명확히 분리된 lead 스타일과 달랐다. 흔히 "the ancient art of weaving"이라 부르는 방식에서는 rhythm과 lead 책임이 두 연주자 사이를 더 유동적으로 오간다.

Wood는 밴드의 기존 문화 안에 시각적으로도 편안하게 들어맞는 성격을 가져왔다. Faces와 Jeff Beck Group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유명 조직에 들어오는 무명 뮤지션도 아니었다. 아카이브에서는 전환이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이 모든 멤버 교체가 밴드를 바꾼다는 사실을 지우면 안 된다. 새 기타리스트는 편곡, 즉흥 연주, 중심 작곡 파트너 주변의 사회 구조를 바꾼다. Stones는 멤버를 바꾸면서도 연속성을 주장해 살아남는다. 이 역설이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Keith Richards의 Toronto 체포가 생존 서사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가 살아남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Richards의 heroin addiction과 1977년 Toronto 체포는 밴드의 미래와 그의 자유에 실제 위협이었다. 후대 역사는 모든 것을 살아남은 인물의 신화 일부로 이 사건을 바꾼다. 영화는 위험을 실제 위험으로 남겨둘 때 가장 유용하다. Addiction은 록 진정성의 증거가 아니고, 법적 위기는 그 사람이 훗날 원로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다채로운 투어 trivia가 되지 않는다.

Richards가 heroin 문제를 직면한 결정은 밴드가 계속될 수 있었던 데 중요하지만, 하나의 깔끔한 구원 순간처럼 써서는 안 된다. 회복, 창작, 개인 관계는 anniversary documentary 구조가 만드는 것보다 복잡하다. Morgen이 첫 20년에 집중한 덕분에 이 시기는 거의 결말처럼 기능한다. 1980년대 초까지 Stones는 전설을 만든 위기들을 살아남았다. 이후 수십 년은 그 전설의 내구성을 증명한다.

공식 협력은 엄청난 접근권과 분명한 관점을 동시에 준다

영화는 Rolling Stones의 전폭적 협력 아래 제작됐고, Jagger, Richards, Watts는 프로듀서에도 포함됐다. 그래서 비공식 영화가 얻기 어려운 수준의 아카이브와 현대 인터뷰 목소리에 접근할 수 있다. 동시에 이 다큐멘터리는 공식적으로 승인된 자기 역사이기도 하다.

이 표현을 비난처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밴드는 자기 삶의 정당한 증인이다. 역사적으로 필요한 것은 참여자에게도 이해관계, 기억, 선호하는 서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Crossfire Hurricane은 아카이브가 목소리를 복잡하게 만들 때 가장 강하다. 젊은 Jagger나 Richards는 늙은 목소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과거는 화면에 남고 현재는 사운드트랙에서 논평한다.

영화는 longevity가 일상이 되기 전에 멈추기 때문에 작동한다

Rolling Stones는 Morgen이 깊이 다룬 시기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투어하고, 녹음하고, 큰 사건을 만들었다. 더 긴 영화라면 모두 문서화할 수 있었다. 아마 덜 많은 것을 드러냈을 것이다.

첫 20년에는 결성, 급격한 유명세, 작곡, 국가 권력의 압력, 죽음, 멤버 교체, Altamont, 망명, addiction, touring machine의 형성이 들어 있다. 후대의 생존이 역사적으로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이 위기들이 밴드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Crossfire Hurricane은 50주년을 이용해 50주년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시기를 돌아본다. 승리 퍼레이드보다 훨씬 좋은 이야기다.

감상 및 소장 메모

111분짜리 2012년 장편을 기준 작품으로 사용한다. Stones의 50주년을 위해 제작됐지만 주요 역사적 초점은 1980년대 초 무렵에서 사실상 끝난다. 공식 승인 작품이라는 점은 특별한 접근권과 참여자 관여로 설명해야지, 중립적 최종 역사라는 증거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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