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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060No Direction Home: Bob Dylan2005
스크리닝 룸 · 영화 060

No Direction Home: Bob Dylan

Scorsese가 감독이 되기 전부터 존재하던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만든 기념비적 초기 커리어 전기

감독Martin Scorsese
영화 연도2005
상영 시간208분
국가
아카이브 분류Folk / Folk-Rock / Singer-Songwriter / Artist Documentary

Scorsese의 Dylan 영화가 1966년에 끝나는 이유는 그 이후까지 넣으면 첫 네 해가 덜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Bob Dylan의 완전한 전기를 만들려면 터무니없는 러닝타임이 필요하다. 2005년까지 그는 이미 folk, electric rock, country, Christian music, 여러 번의 투어 복귀, 수많은 재창조, 미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거대한 song catalogue 중 하나를 지나왔다. No Direction Home은 완전함을 거부하는 올바른 선택을 한다.

208분짜리 다큐멘터리는 Dylan이 1961년 New York에 도착한 시점에서 시작해 electric controversy, Hawks와 함께한 1966년 world tour, 그리고 그해 7월 오토바이 사고까지 집중한다. PBS는 희귀 공연 영상, 기자회견, 동시대 인물 인터뷰를 사용해 folk troubadour에서 cultural icon으로 변하는 Dylan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설명한다.

좁은 시간 범위 덕분에 변화는 다시 비범하게 느껴진다. 몇 년 사이 Robert Zimmerman은 Bob Dylan이 되고, Greenwich Village folk culture를 흡수하며, 정치적 anthem처럼 받아들여지는 곡을 쓰고, 그 곡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공적 역할을 거부하고, 전기 악기를 들고, 자기 관객 일부에게 비난받으면서 Bringing It All Back Home, Highway 61 Revisited, Blonde on Blonde를 만든다. 후대의 Dylan 역사는 재창조를 일상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Scorsese의 영화는 아무도 재창조가 그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아직 몰랐던 시기로 돌아간다.

프로젝트는 Scorsese가 합류하기 전에 시작됐고, 그래서 authorship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제작 사실 중 하나는 No Direction Home이 Martin Scorsese가 독립적으로 Dylan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은 Dylan 매니지먼트 주변에서 진행하던 아카이브·인터뷰 작업에서 자랐다. Jeff Rosen은 1990년대 중반부터 친구, 관계자, 역사적 증인의 인터뷰를 녹음하기 시작했고, Dylan 자신도 2000년에 Rosen과 방대한 인터뷰를 했다. Scorsese가 참여했을 때는 이미 상당한 oral-history 및 archive project가 존재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의 놀라운 접근권을 감독의 명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Rosen, PBS American Masters, BBC Arena, 더 넓은 제작 네트워크가 Scorsese와 편집자 David Tedeschi가 나중에 영화로 형성한 증거를 구축했다.

Hibbing이 중요한 이유는 Dylan이 영화 나머지 시간 동안 전기가 자신을 넣는 모든 장소에서 빠져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Dylan은 Duluth에서 Robert Zimmerman으로 태어나 Minnesota의 Hibbing에서 자랐다. 전통적 전기는 이런 기원을 심리적 열쇠로 사용해 후대 아티스트를 설명하는 어린 시절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No Direction Home은 어린 시절이 운명보다 restlessness를 보여줄 때 더 유용하다.

젊은 Zimmerman은 radio, rock and roll, country와 다른 American popular music을 흡수한 뒤 folk를 통해 New York의 문화 세계에 들어간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일부는 커리어 결정이고, 일부는 자기 창조이며, 일부는 performer가 공적 정체성을 다시 만드는 오랜 American tradition에 참여하는 것이다.

Greenwich Village는 Dylan이 배신자로 비난받기 전에 먼저 참여해야 했던 전통을 제공한다

초기 New York 부분은 후대 electric controversy를 이해하려면 필수다. Greenwich Village folk music은 club, coffeehouse, collector, political song, 나이 든 performer, traditional repertoire, 그리고 authenticity라는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진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Dave Van Ronk, Pete Seeger, Joan Baez 등은 이 세계에 서로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Dylan은 역사적 lineage가 중요했던 scene 안에서 곡을 배우고, 공연 스타일을 흡수하고,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동시에 그는 엄청난 야망도 보였다.

영화는 그를 Village가 발견한 수동적인 천재로 만들지 않는다. Dylan은 보고, 배우고, 경쟁하고, 적응한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낭만적인 folk-community 이야기가 전문적 야망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적 타협을 의심하던 문화 안에서도 아티스트는 관객, 레코드 계약, 인정을 원했다. 나중에 전기 악기를 둘러싸고 폭발할 갈등은 이미 작은 형태로 존재한다. 전통은 성공한 개인이 그 전통이 허용하는 것을 바꾸려 할 때 어떻게 살아남는가?

Woody Guthrie는 영향이자 목적지가 되고, 결국 Dylan이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된다

Woody Guthrie에 대한 Dylan의 존경은 초기 레퍼토리, 보컬 방식, political-song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줬다. New York에 도착한 뒤 병든 Guthrie를 찾아간 일은 개인적 순례이면서 American folk lineage와의 상징적 연결이었다.

Joan Baez는 협업자이자 연인이며 이미 성공한 스타였던 증인이다

Joan Baez의 인터뷰가 중심적인 이유는 Dylan의 유명세가 자신을 넘어서기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전문적 관계가 그녀를 여러 역할에 동시에 놓는다.

Baez는 Dylan을 더 큰 folk audience에 소개하는 데 도움을 줬고, 그의 곡을 불렀으며, 연인 관계도 가졌다. Dylan의 음악과 공적 정체성이 바뀌면서 관계도 변했다.

약한 다큐멘터리라면 Baez를 감정적 전기를 위한 증인으로만 사용했을 수 있다. 그녀의 증언은 folk scene, Dylan의 야망,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버전에서 그가 얼마나 빠르게 멀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

protest song은 Dylan이 관객이 상상한 형태로 정확히 지원하지 않았던 공적 직업을 만들어낸다

Civil rights, nuclear anxiety, 사회적 불의를 다룬 곡들은 Dylan에게 엄청난 문화적 중요성을 줬다. 동시에 그가 가장 끈질기게 거부한 라벨 중 하나인 "voice of a generation"도 만들었다. 영화는 유용한 songwriting이 얼마나 빠르게 공적 책임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Blowin' in the Wind" 같은 곡은 정치 운동을 통해 유통되며 작가보다 더 큰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관객은 작가가 계속 같은 역할의 곡을 생산하기를 기대한다.

Newport 1965가 중요한 것은 Dylan이 전기를 사용했기 때문보다 관객이 전기를 도덕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1965년에 전기 악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Dylan 자신도 rock and roll을 들으며 자랐다. Newport Folk Festival 공연의 역사적 충격은 그 무대에 붙은 문화적 의미에서 나왔다.

folk audience 일부는 electric rock을 단순한 편곡 선택이 아니라 가치의 거부로 받아들였다. 상업화, authenticity, 정치적 진지함이 acoustic instrumentation과 얽혀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Newport를 극적인 전환점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이 충돌이 더 큰 변화를 압축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Dylan의 electric music 이동은 이미 Bringing It All Back Home 음반에 나타났다. Festival은 자신에게 특정한 권리가 있다고 느끼던 공동체 안에서 그 변화를 공개적으로 만들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booing이 있었고 각 관객이 무엇에 반대했는지는 오랫동안 논쟁됐다. 나쁜 사운드, 짧은 세트, 스타일에 대한 분노가 모두 반응에 기여했을 수 있다. 영화의 가치는 하나의 crowd reaction에 하나의 동기만 있었다고 가장하기보다 disagreement를 보존하는 데 있다. Myth는 하나의 야유하는 관객을 좋아한다. History에는 많은 귀가 있다.

Al Kooper의 "Like a Rolling Stone" 오르간은 우연이 나중에 필연적 걸작처럼 들리는 레코드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Highway 61 Revisited 세션을 둘러싼 Al Kooper의 증언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유용한 스튜디오 역사 가운데 하나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계획한 확실한 오르간 연주자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오르간 사운드는 initiative, opportunity, 그리고 producer Tom Wilson의 세션 환경을 통해 나타난다.

바로 이런 이야기가 canon이 된 녹음을 다시 인간적으로 만든다.

1966년 투어 영상은 관객의 적대감을 거의 물리적 압력으로 바꾼다

D. A. Pennebaker가 Dylan과 Hawks의 1966년 투어에서 촬영한 컬러 영상은 마지막 부분에 엄청난 즉시성을 준다. Criterion의 Bob Dylan Archive 글은 이 자료를 Dont Look Back의 일종의 후속처럼 설명하며, Pennebaker가 다시 intense touring condition 속 Dylan과 주변 인물을 촬영했다고 본다. 콘서트는 acoustic과 electric 세트로 나뉘고, 관객 일부의 적대감은 밤마다 공연 환경의 일부가 된다.

Manchester의 "Judas" 사건이 가장 유명하지만, 한 단어에만 집중하면 누적된 압력을 놓칠 수 있다. Dylan과 Hawks는 관객 일부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방에 반복해서 들어간다. 밴드는 더 세게 연주하며 응답한다.

Hawks는 필수적이다. "Dylan goes electric"이라는 문구가 집단적 사운드를 한 사람의 결정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훗날 The Band가 되는 뮤지션들은 Dylan의 1965-66년 전기 투어에 필요한 힘 상당 부분을 제공했다. Robbie Robertson의 기타가 특히 두드러지지만, Levon Helm, Rick Danko, Richard Manuel, Garth Hudson도 어려운 투어 시기 동안 변하는 인원 상황 속에서 이 무대 사운드 발전의 더 넓은 역사에 속한다.

오토바이 사고는 실제 사건이면서 영화가 결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작동하는 끝점이 된다

Dylan은 1966년 7월 New York Woodstock 인근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고, 이전 수년을 규정했던 가혹한 public touring cycle에서 물러났다. 사건은 거의 지나치게 편리한 결말을 제공한다. 수년간의 가속이 갑자기 멈춘다. 영화는 1966년의 압력에서 빠져나오고 다음 단계를 프레임 밖에 남길 수 있다.

Dylan의 2000년 인터뷰가 특별히 유용한 이유는 질문을 Scorsese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사용된 방대한 Dylan 인터뷰는 Jeff Rosen이 진행했다. 홍보는 전설적 감독과 전설적 songwriter가 마주 앉은 역사적 대화를 상상하게 만들기 쉽지만, 실제 제작 방식은 더 아카이브적이고 덜 영화적이다. Rosen은 수년간 증언을 수집해 왔고 외부 interviewer에게 없는 Dylan의 전문 세계와의 관계를 갖고 있었다.

Dylan의 답변은 같은 대화 안에서 솔직하면서도 회피적일 수 있다. 초기 야망의 세부를 제공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하나의 확정된 버전으로 설명하는 역사학자 역할을 거부한다.

Suze Rotolo는 유명한 앨범 커버가 자기 정체성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사적 역사를 되찾는다

Suze Rotolo는 The Freewheelin' Bob Dylan의 표지에서 Dylan 옆에 서서 눈 덮인 Greenwich Village 거리를 걷는 이미지 때문에 Dylan 신화에 영구적으로 들어갔다. No Direction Home은 그 사진을 다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을 준다.

Rotolo는 젊은 Dylan 주변의 사회적·정치적·개인적 환경을 자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가족의 정치, Dylan과의 관계, Village culture 안에서의 위치가 그동안 자신을 너무 자주 "표지의 여자친구"로만 축소했던 역사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사운드트랙 앨범은 또 하나의 제목 충돌을 만들며 깨끗한 메타데이터를 요구한다

The Bootleg Series Vol. 7: No Direction Home: The Soundtrack는 영화와 함께 발매됐다. 제목에 "soundtrack"이 들어가지만 208분 다큐멘터리의 단순 오디오 추출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컬렉션에는 해당 시기와 영화의 역사 프로젝트와 연결된 녹음, alternate 및 archive material이 들어 있지만 독립적으로 큐레이션된 Bob Dylan 발매물이다.

다큐멘터리는 Dylan을 미스터리로 남겨둔다. 역사적 디테일과 심리적 확신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시간 반은 엄청난 정보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영향, 관계, 곡, 세션, festival, 기자, 정치, 투어. 그래도 영화는 Bob Dylan을 해결하지 못한다. 회피적인 칭찬이 아니라 방법론적 강점이다.

사람들은 Dylan이 무엇을 했고 자신들이 그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아카이브 영상은 특정 순간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여줄 수 있다. Dylan은 수십 년 뒤 자신의 동기 일부를 설명할 수 있다.

감상 및 소장 메모

208분짜리 2005년 2부 다큐멘터리를 기준 작품으로 사용한다. 2005년 9월 26-27일 PBS/BBC 2부 방송 구조를 DVD 패키지 러닝타임 및 The Bootleg Series Vol. 7: No Direction Home: The Soundtrack와 별도로 보존할 것. 이 오디오 발매는 영화의 직접적인 오디오 복사본이 아니라 동반 아카이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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